독후감면도날20250209유튜브나 인스타를 통해서 서머싯 몸의 면도날이 꽤나 핫한 책인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북클럽의 첫번째 책으로 골랐는데 생각외로 두껍고, 생각외로 진지한 책이었어서 놀랐다. 요즘 사람들은 이런 책을 읽으며 남들과는 다른 나만의 힙함을 느끼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 유명한 달과 6펜스도 아직 안 읽었거늘, 그의 나중 작품으로 그의 문체나 말하고자 하는 것을 알게되어서 ,천만영화 안보고 같은 감독의 덜유명한 영화를 본, 한마디로 더 힙해진 기분이었다.
 서머싯몸 본인이 등판하여 래리라는 인물을 서술하는 방식이 재밌었다. 좀 더 시대의 묘사를 디테일하게 설명하려고 본인 이름을 그대로 쓴 건지, 아니면 이 일은 실제로 일어난것처럼 사실감을 주기위해 한 건지, 궁금했다. 작가가 워낙 자기가 직접 겪고 들은 얘기처럼 잘 썼기에 소설의 주인공들이 실존한다면 서머싯 몸을 고소해야하지 않나싶었다. 그정도로 현실감 넘치는 인물들 속에서 나는 작중 화자인 서머싯 몸과 비슷한 스탠스를 일상에서 취하지 않나 싶었다. 래리와 같이 질문을 많이 던지는 삶을 가지면서도 엘리엇처럼 돈과 화려함을 가까이하는 중간의 포지션을 취한다. 래리처럼 살기에는 부유하고 풍족한 현실을 추구하는 것을 포기할 수 없고, 엘리엇처럼 살기에는 그들이 너무 속물처럼 보여서 조소를 날린다. 예술가라는 이름으로 그들을 관찰해내어 제3자처럼 보이지만 제일 겁이 많은 인물아닐까싶다. 소설 속에서 왜 그렇게 결말을 맞이 할 수 밖에 없었나 싶었던 의외의 인물은 소피였다. 아무래도 소설속의 시대와 이 글이 쓰여진 당시 시대상을 생각해보았을때 여성인물들이 납작하게 나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녔다. 그래서 흐린눈하고 읽기는 했지만, 큰아픔을 가진 소피가 결국 중독자의 삶에 헤어나오지 못하는, 그리고 이를 마땅하다는 듯이 죽음으로 마무리하는 부분은 많이 아쉬웠다. 하긴 소피가 래리랑 잘되어서 일반적인 삶을 살며 시인이 되었다거나 했으면 이 책의 주인공
은 소피였으려나. 그나마 능동적으로 여성인물들중에 그나마 본인아 일궈내는 삶을 사는 것은 수잔 같아 보이나 그녀또한 남자한테 기대어야 삶을 살아낼 수 있던 모습으로 나와 아쉬움을 주었다.
 제목이 왜 면도날인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물음표를 던졌다. 면도날이라는 것이 한끝의 예리함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제일 재밌게 읽었던 6장을 읽으면서 면도날을 상징하는 사람은 궁극적으로 래리가 아니었을까싶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지만 한결같은 방향으로 전진하는 모습이 가슴속에 면도날을 품고 사는 사람같았다. 사람과 속세와 팽팽한 줄을 당기면서 품은 면도칼로 언제든 끊어낼 수 있는 래리, 그의 자유로움이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부러웠다.
독후감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20250228

포스트맨은 두번 벨을 언제 울리는가 읽는 내내 기다렸던 작품이다. 결국 이 장면은 한번
도 나오지 않고 제목으로만 쓰여서 물음표를 남겼음에, 구글에 찾아보고 알 수 있었다. 실제사건을 배경으로 한 두번을 벨을 울리는 우편배달부와의 사인이었다.
 제목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드는 것에 비해, 상당히 가볍게 빨리 후루룩 읽어 내려간책이다. 다 읽고 나면, 영화 한편을 보고 난 느낌이다. 실제로 이러한 책의 특성때문인지 영화가 두번이나 만들어져는데, 최근작은 잭니콜슨이 나오는 관계로... 그의 얼굴이 너무 무서운 나는 볼 생각을 못했다. 프랭크가 잭니콜슨이라니 너무 무섭지않은가!
 어떤 욕망때문에 그리고 살인하고자 하는 인물에 대한 거북함등이 정말 살인이라는 행동을 유발시킬 수 있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나도 누군가를 역겹다고생각하며 증오해본 적도 있고, 데스노트만 나에게 주어진다면 써내려갈 이름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에게 아무리 무기를 주고 그 사람을 내앞에 데려와주고 내가 살인을 저질러도 아무도 모를거라 할 지라도 그걸 실행하는 건 인간이 할 수 있는 영역 밖의 일 같다. 어떠한 생명체를 죽이는 것도 상당히 많은 생각을 하게 될 일같은데, 내가 나와 같은 다른 인간을 죽인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상상력이 좋은편이고 평상시에 오만상상을 하는지라 이 건에 대해 상상을 안해본것도 아니다. 그리고 많은 미디어들이 보여주는 것에 따르면 어떻게 살인장면이 내 동공에 비쳐질지도 대충 상상이 간다. 고기를 먹는 내가 ‘인간’이라는 이유로 ‘인간’을 어떻게 죽일수 있어? 라고 말
한다기보다는 나와 비슷하게 생긴 인간의 죽음을 앞에서 보면 그 고통이 나에게 그대로 전달될 것같기에 나에게는 살인을 실행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 같은 것이다.
 어쩌면 내가 운이 아주 좋게도 진심으로 누군가를 죽이고 싶을만큼 증오와 혐오하는 사람이 없어서 이런 말을 할지도 모른다. 내가 누군가가 죽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은 지구공동체 차원에서 해로운 이 같으니 지구상에서 사라져줬으면 하는 바람인것이고, 중세시대에 국민들의 오락놀이였던 사형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아휴 잘 죽어서 속시원하다 정도로 얘기할 수 있는 그런 가벼운 리액션정도할 수 있는 정도지 내가 그걸 집행하라고 하면... 그것은 다른 얘기인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어떤 대의를 위해 살인을 저지른 사람들도 개인이아닌 다수가 염원하는 욕망과 그 상대에 대한 역겨움의 합작으로 본인이 단행한 일인텐데, 그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석을 하면 좋을까싶다. 마치 안중근테러리스트가 우리에게는 안중근의사인것처럼 말이다. 파고들자면 인간이 같은 인간을 죽일 권리가 있는가에 대한 애기까지 나올 수밖에 없다. 내가 실행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사형제도에대해서는 찬성하지만 그것을 내가 하라고 하면 못하겠는 일이니 말이다. 먼 훗날 에이아이가 사형집행도 대신해준다 할 때 우리는 그것에 대해 어떻게 얘기를 나눌 수 있을지 미리 짚고 넘어가봐야 할 일이다.
독후감귀신들의 땅 20250410

예전에 급히 가게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4개의 단편으로 엮인 영화를 보았다. 그 중에서 필리핀에서 온 공포영화를 보게되는데, 가뜩이나 공포영화를 못보는 내가 동아시아와는 다른 느낌의 으스스한 공포영화를 보며 필리핀은 뭐길래 이렇게 호러물을 잘만드나 싶었다. 그때 친구가 원래 진짜 공포영화는 식민지였던 나라들이 잘만든다고 했던 얘기를 해줬다. 그 나라의 슬픈 역사가 컨텐츠가 되다니 웃픈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귀신들의 땅을 읽으며 이 나라 는 뭐길래 귀신이 이렇게 많고 중원절이라고 귀신들에게 제사까지 지내는가 싶었고, 대만의 역사를 급하게 공부하게 만들었다. 역사적으로 고달펐던 대만에는 한을 가진 귀신이 많을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절대 안 볼 예정이지만, 대만의 공포물도 궁금해졌다.
 초반에 계속 변하는 화자와 친숙하지않고 비슷비슷한 등장인물들의 이름때문에 1/3정도 읽는동안 헤멘것 같다. 그 이후부터는 두껍지만 쭉 빠져서 읽었다. 이런 정신산만할법한 구성에 대만의 초고속성장과 함께한 주된 세 장소이동(용징-타이베이-베를린)과 각 주인공들의 다사다난한 이야기들이 800페이지들을 신선하게 채워나간거같다. 최근에 본 펄프픽션에서 각 이야기들이 결국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당시에는 쇼킹했던 구성을 생각나게 했다.
 아무래도 해외에 살고있는 아시안으로서 천텐홍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나올때 가장 공감하며 읽게되었다. 하지만 k-장녀로서 또다른 유교국가의 후손으로서 자매들의 이야기가 나올때도 비록 나와 직접적인 연결고리는 없지만 어디서 보고들었던 얘기들이 생각나 공감하며 읽게 되었다. 이러한 지구촌시대에,밥은 굶지않은,전쟁도 직접 겪지않은, 그러나 많은 자살률을 기록하고 사회가 전반적으로 우울한시대에 태어나고 자란 우리들은 귀신이 되면 때깔이 좋을까? 한이 많을까?
대만을 중국이 포위하고 있다한다. 지금 당장이라도 전쟁이 일어날 기세다. 가까운나라에서 더이상 더많은 귀신 얘기가 안나왔으면 좋겠다.


에세이취미는 취미일때 아름다운거지 20250823
“수하야 돈잡아라 돈!”, “아니 공부 잘하게 연필잡아라!” 이것이 나의 돌잔치 때 풍경일 것이다. 이제 막 한살이 된 어린아이의 운명을 물건에게 맡기는 모습이라니. 나는 물론 어른들의 성화에 못이겨 첫째딸, 첫손녀, 첫조카답게 연필을 의젓하게 잡아 쥐었고, 그때부터 모든 이들의 기대에 부응하며 열심히 그리고 곧잘 반1등, 전교1등을 하며 공부잘하는 아이 타이틀을 땄다. 근데 그때까지 모두들 몰랐을 것이다. 내가 쥐었던 연필이 공부연필이 아닌 그림연필인 4B인것을.

 나의 부모님은 나름의 갖고있던 육아철학때문인지 뭔지 모르는 것 때문에 장난감 코너는 아이쇼핑만 할 수 있는 곳이었다. 나는 착한 맏딸이었기에 장난감을 사달라는 떼를 쓰는 법을 몰랐고, 그저 집에 돌아와서 아까 마트에서 보았던 것들을 그리고 만들었다. 하루는 당시 어느정도 산다는 초등학생 집에 가면 볼 수 있는 미국산 포켓사이즈의 인형집 폴리하우스가 너무 탐나서 친구집에서 돌아오자마자 밤을 새며 인형의 집을 그리고 만든 적이있었다. 그뿐이겠는가, 친구들과 시장놀이를 하고싶어 종이박스로 마트에 있는 물건들을 구현해보기도하고, 생일파티를 하면 친구들에게 와줘서 고맙다는 감사카드와 고깔모자를 손수 만들기도 했다. 나에게 그리고 만드는 미술이란 자급자족놀이를 위한 생활이었다. 

 그때까지 놀랍게도 미술학원은 한번도 다니지 않았다. 동생이 나오는 막달, 배부른 엄마의 손을 붙잡고 외갓집근처에 있는 미술학원을 다닌게 전부였다. 그때 처음으로 쭈그리고 앉은 접힌 팔과 다리를 그리는 방법을 배운 것은 나의 7세 인생에 있어서 꽤나 충격적인 배움이었다. 그리고 나는 갑작스럽게 예술고등학교 준비를 위해 미술학원을 입시 세달전에 다니게된다. 내신등급제라는 달라진 입시시스템으로 인해 좋은 대학을 가길 바랬던 부모님은 공부잘하는 학교에서 꼴찌가아닌, 성적이 안좋은 지방예술고등학교에서 1등을 하길 바라며 지원서를 들이밀었다. 그전까지 세일러문이나 따라그릴 줄 알던 단발머리 중학생은 급작스레 4B연필을 길쭉하게 깎는 법을 배우고 명암을 넣어 아그립파 석고상을 그리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고등학생이 된 나의 대학입시시절부터 대학생이 되어 숙취에 시달리는 날이 아니고서야 하루도 쉬지않고 그림을 매일 쭉 그렸다. 하루의 반나절 내내 그림그린적도 날밤을 샌적도 잦았다. 어깨가 찢어질거같고 목과 허리가 뜯어나갈 것 같아도 이 모든게 심장을 두근거리게했다. 내가 무언가에 열중해서 창조해낸다는 것, 내가 머릿속에 감춰두었던 이미지나 이야기들을 나의 바깥으로 꺼내는 것 모두 큰 재미였다. 엄마도 아빠도 친척들도 학교선생님이 되라는 성화에 맞서 싸우며, 더이상 착한아이 콤플렉스에 지배당하지 않겠다며 예술가라는 직업을 택했다. 그러니까 나의 취미생활은 이제 돈벌이 수단이 되었다,

그때부터였을까, 인생이 고통이다라고 느꼈던 것은. 나는 항상 부족한 지갑사정에 시달려야했다. 그리고 원래 해왔던 예술분야를 등지고 돈을 벌러 떠나는 친구들이 점점 늘며 외로움도 커졌다. 다들 하나둘씩 직함이 생기고 계좌에 차곡차곡 돈이쌓이면서 차를 사녜, 집을 사녜, 결혼을 하녜 할 적에도 나는 엄마아빠집에서 기생하며 살고 있었다. 아침에는 파주갔다가 저녁에는 인천을 왔다갔다하며 미술강사로서 디자이너로서 또는 아티스트로서 살았다. 할 줄 아는 것은 많아지고 나를 칭하는 이름도 여럿인데 명절마다 나는 한없이 작아지는, 아직도 돈에 허덕이는 철없는 백수딸이었다. 나는 그럼에도 아직 예술을 사랑했고 예술가란 이름으로 살고싶었기에 더 많은 기회를 찾아보겠다고 예술의 나라 프랑스라는 연고없는 낯선 땅으로 향했다. 

 환경이 바뀌면 더 많은 창조적 영감과 창작할 기회를 줄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어리석었다. 그렇지만 그동안 이곳저곳 부딪히며 겪어온 나는 아주 어리지도않고, 알거는 다 아는 사람이기도 했다. 프랑스는 적당히 젊고 적당히 아는 나에게 호락호락 하지않았다. 청년할인에는 한두살 차이로 해당이 안되었으며, 적당한 영어실력과 지식들은 나를 콧대높은 폐쇄적인 인간으로 만들었다. 프랑스라는 언어의 장벽은 어마무시하게 높았고, 외국인이라는 신분은 큰 걸림돌이었으며, 비자 문제는 항상 따라 다녔다. 한국에서 꽤나 잘통했던 내 이력서는 더이상 외국의 땅에서는 쓸모가 없었다. 모든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했었다. 나는 계란한알 값에 손을 떨수밖에없는 더한 가난을 맛봐야했고 내 얘기를 들어줄 사람 하나도 없는 곳에서 더한 외로움에 맞닥트려야했다. 생존이 1순위가 된 이상 예술은 사치였다. 문화와 예술의 도시 파리에 있는 10개월동안 그 유명한 루브르도 퐁피두도 가지못했다. 그림 한장 그릴 체력으로 1€라도 더 벌어와야했다. 하지만 패배자라는 낙인이 찍힐것이 두려워 한국에 돌아가고 싶지않았다. 

 올해로 프랑스에 산지 햇수로 칠년이다. 프랑스는 이제 익숙한 곳이고 나의 삶의 터전이다. 한국욕보다는 프랑스 욕이 입에 찰떡으로 붙고, 꿈도 프랑스어로 꾼다. 그럼에도불고하고, 나는 그림을 안그리고있다. 즉각적으로 돈으로 환산 되지 않는 것에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는게 무슨 소용이 있나 싶다. 예술은 생존에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럴수록 모순적이지만 예술에 대한 갈망이 커진다. 나이 듦에따라 확고해지는 취향과 높아지는 눈에 반비례한 내 답답한 종이 위의 손은 예술을 더 신성하고도 어려운 영역으로 만든다. 작업을 하고싶은 욕구가 점점 커갈수록 흰캔버스를 마주할 자신이 없다. 나는 신병난 무당처럼 앓고만 있다. 그러나 작두탈 용기는 없는 쫄보 무당이다. 나는 오늘도 왜 프랑스에 왔더라 가물가물한 기억을 더듬어본다.